저작권법 제1조, 그리고 인공지능

2026년, 이미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필자가 “인공지능”이 더이상 공상과학에만 등장하는 개념이 아니라 정말 현실에 훅 다가왔다고 느끼게 된 사건은 알파고와 이세돌이 세기의 대결이었습니다. 그 대국이 있었던 2016년 인공지능은 이미 체스에서는 인간을 넘어서버렸고, 바둑에서도 인간을 넘어서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 모든 사람들은 10년 후, 현재와 같은 역할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AI와 저작권 사이의 긴장상태는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알파고가 수많은 기보를 학습하여 결국 인간을 넘어섰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기보의 저작물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있었던 2016년 8월 조훈현 의원 등 24인은 바둑 대국의 기록물인 기보를 저작권법 보호대상임을 명확하게 하고자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되었지만, 법안 제안 이유를 들여다보면 당시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 (조훈현의원 대표발의)

  • 의안번호 1408, 발의연월일: 2016.8.4.바둑 대국의 기록물인 기보는 대국자의 사상과 감정이 창작적으로 표현된 저작물에 해당하고, 프로기사의 기보는 가치 있는 저작물로서 많은 대중이 연구하고 감상하는 저작물임. 현재 케이블 TV나 위성방송의 바둑 프로그램,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하여 기보를 이용한 서비스의 상업적 이용이 증가하고 있으나 기보 이용에 관한 저작권이 명확하지 않아 저작자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는 실정임. 특히 일부 출판업자나 인터넷 사업자는 기보가 대국자의 우발적 착수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어 기보의 저작물성을 부인하면서 기보를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음. 이에 현행법 저작물의 예시 조항에 기보를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기보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임을 분명히 하여 프로기사 등 기보에 관한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임

당시 기보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에 대한 세간의 의견은 갈렸습니다. 바둑은 기사의 우연적 착수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고민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며, 이러한 바둑기사의 착수는 정신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이를 기록한 기보도 저작물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는 한편, 바둑을 둘 때 기사들이 바둑알로 위치를 잡는 것이 승부를 위한 전략이지 예술적, 창작적 노력을 위한 고뇌의 결과물로 나타난 표현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기보가 아름답고 창의적인 예술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저작물로 볼 수는 없다는 주장도 존재했습니다.

사실 가볍게 보면, 그냥 저작물로 인정해주면 되는거 아닌가? 어쨌든 노력을 기울인 게 맞는데 그 결과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도 권리를 인정해주면 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보 하나에도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저작물이 될 자격, 즉 “저작물성”이 있는지 학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은 저작권법 제1조에 담겨있는 그 목적이 꽤나, 무겁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제1조 (목적)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저작권법은 흔히 저작자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만 하는 법이라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작권은 배타적인 권리이며 저작권 침해를 하는 경우 형사 처벌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배타적인 권리란 말 그대로 배(排)+타(他)+적(的), 타(他)인을 배(排)제하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내가 권리를 가지게 되면 그 권리의 대상물을 이용하는 데에 타인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나만 쓸 수 있다고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저작물로 인정되기 시작하면, 그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진 “저작자”는 꽤나 강력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그럴법도 한게, 창작물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 정도로 상당한 양의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합니다. 창작물을 하나 세상에 내놓는 데에 드는 노력과 시간을 출산에 비유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저작물이 가지는 의미는 무겁습니다. 과연 기보가 그러한 무게를 짊어질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겨보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도 만약 정말로 기보가 저작물에 해당한다면 그 기보를 창작한 두 사람의 바둑기사는 내 자식과 같은 기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고 학대 당하는 것을 보면 눈물을 흘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둑황제” 조훈현 의원은 기보도 저작물로 명확하게 인정하자, 면서 법안을 발의한 것이겠지요.

조훈현 의원 발의 법안의 제안이유에는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보가 대국자의 우발적 착수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어 기보의 저작물성을 부인하면서 기보를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음. ”이 그것입니다. 알파고를 학습시킬 때에도 기보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한(필자는 아직도 기보를 저작물로 부를 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바둑기사들에게 허락을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작물성이 모호한 기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반발이 일어나는데, 저작물로서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어문저작물, 미술저작물, 음악저작물 등을 자식으로 두고 있는 저작자들이 2026년 현재, 끝없는 양의 저작물을 허락도 없이, 심지어 불법적인 루트를 거쳐서 저작물을 확보하고 이를 욕심 많은 인공지능의 학습 재료로 이용하는 인공지능 기업에 대해서 얼마나 큰 분노를 가질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당연하지만, 저작자들은 분개하여 인공지능 기업들을 대상으로 다수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일부 소송은 마무리 되었고 일부 소송은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소송의 과정에서 인공지능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습니다. 여기서 인공지능 기업은 저작권법 제1조의 “공정한 이용”이라는 카드를 뽑아듭니다.

여기서 저작권법 제1조의 내용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저작권법 제1조 (목적)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다음에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라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만을 보호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것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저작자 보호는 해야하지만, 이용자도 공정한 이용이라면 좀 봐주자, 라는 것입니다.

저작권법에는 다양한 형태로 저작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도 존재합니다. 그 중 저작권법 제35조의5(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조항을 보면, 어떤 것이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아야 합니다. 저작물을 일반적으로 누구나 다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데,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 아주 추상적이고 좋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충 견적은 나옵니다.

왜 인공지능 기업들은 공정한 이용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공정한 이용이란 무엇이냐, 를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인공지능 기업들은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해 이용되는 데이터셋(dataset)은 인터넷에 이미 공개된 정보들을 긁어모아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의 일반적인 이용 방식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블로그 글을 이용하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1. 링크에 접속한다, 2. 눈으로 보면서 읽는다, 3. 맘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복사해서 소장하거나 내 글에 인용하기도 해본다. 이정도입니다.

인공지능 기업은 바로 이 부분을 꼬집어 내어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1. (크롤러를 통해서)링크에 접속한다. 2. (크롤러의)눈으로 보면서 (크롤러가 가져다주는 글의 내용을 인공지능이) 읽는다. 3. (인공지능 학습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복사해서 소장하거나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결과물에) 인용하기도 해본다. 사람이 인터넷에 공개된 저작물을 소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또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도 인공지능 기업이 할 말은 있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크롤러가 수집하는 행위가 과연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얼마나 해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라는 것이 애초에 합법적으로 업로드 된 것이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사람이 수집하나 크롤러가 수집하나,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는 누군가가 수집하면서 복사해간다고 닳아 없어지지 않습니다. 애초에 인터넷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해놨기 때문에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염려도 없습니다. 유료로 판매되는 저작물이라면 모르겠지만 애초에 무료로 공개해 놓은 정보라면 그것 좀 복사해간다고 손해보겠냐,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작자와 인공지능 기업과의 소송에서 법원의 입장은 기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저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인정한 법원도 있고,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법원도 있습니다. 어느쪽으로 결론이 나던간에, 현재에도 저작물들은 모두 인공지능의 학습 자료로 빨려들어가고 있습니다.

‘생성형 AI의 학습 데이터 사용 및 출력물에 관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한 최근 독일 판결(GEMA v. OpenAI)

“AI 학습, 저작권 침해 아냐” 잇단 판결···저작권 논쟁 새 국면?

여기서 마지막으로 저작권법 제1조를 다시 한번 들여다봅니다.

저작권법 제1조 (목적)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적절한 범위 내에서 이용자에게도 틈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무엇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일까요? 바로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저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이로 인해서 끊임 없이 새로운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원동력은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창작물의 소비자가 될 수 있는 이용자들로부터 벽을 세우면 창작물은 생명을 잃겠죠. 독자 없는 책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용자들이 어느정도는 창작물을 맘놓고 소비할 수 있는 틈은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작권법은 창작물, 즉 저작물을 중심으로 활기찬 시장을 만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인공지능 생성물의 등장은 과연 저작권법의 목표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위협이 되는 것일까요? 일단 저작자들의 경제적 원동력에는 확실히 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자들이 고도의 정신적인 노력을 들여 하나의 저작물을 만들어 내는 시간 동안 인공지능은 수천, 수만의 유사한 창작물을 세상에 내어놓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만들어내는 저작물과 유사한 스타일의 저작물도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소비자인 이용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걸까요? 단기적인 관점에서 이용자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에 최소한의 품질은 보장하는 생성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한테 의뢰해서 받는 것보다는 나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공지능 생성물이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인공지능 생성물을 AI SLOP, 즉 AI 오물이라고 경멸적으로 지칭하면서 이를 소비하는 행태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생성물로 인공지능을 훈련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몇세대가 지나 급격한 품질 저하가 나타나거나 모델이 붕괴한다는 연구결과도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인공지능의 존재로 인해서 문화산업이 긍정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인공지능이 문화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앞으로도 저작권법의 목적과 인공지능은 지속적으로 갈등 상태에 놓일 것 같습니다. 저작권과 인공지능이 함께 공생할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계속 생계에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러다이트 운동과 같이 기계를 부셔가며 제거하려 했지만 결국엔 공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이 생겼고 사회의 모습은 끊임 없이 변화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분리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때, 저작권법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해집니다. 끝끝내 인공지능을 배제할 방법을 찾아낼까요? 아니면 인공지능에 잡아먹히게 될까요? 아니면 미지근한 중간에 머무르게 될까요? 앞날이 기대 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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